[천자칼럼] 스위프트 음모론

입력 2024-02-01 17:57   수정 2024-02-02 14:28

2018년 6월, 미국의 한 시민이 후버댐에서 경찰과 대치극을 벌였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사건에 대한 법무부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숨겨진 비밀 보고서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총기 무장은 물론 사제 장갑차까지 몰고 와 도로를 폐쇄했다. 어제 미국의 한 30대 남성이 부친을 살해한 패륜 범죄로 체포됐다. 그는 연방정부 공무원인 부친을 ‘조국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유튜브에서 절단된 시신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Q’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Q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세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음모론 집단 ‘큐어넌(QAnon)’을 상징한다. 미국 기밀정보 최고 보안등급인 Q등급과 ‘anonymous(익명)’의 합성어다. 큐어넌은 ‘딥스테이트’라는 소아성애 사탄 숭배자들이 미국과 전 세계를 비밀리에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지목한 딥스테이트는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낸시 펠로시,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 민주당 유력 정치인이나 민주당 지지 셀럽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딥스테이트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정의의 사도가 바로 트럼프라는 것이다.

음모론자들이 이번에는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의 동갑내기 연인인 유명 풋볼 선수 트래비스 캘시 커플을 겨냥하고 나섰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 스위프트는 국방부 비밀 요원이며, 그와 캘시의 공개 연애는 바이든 재선을 위한 ‘기획 연애’라는 것이다. 심지어 캘시가 속한 캔자스 치프스의 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 진출도 조작됐다고 했다.

스위프트 음모론은 오는 11일 슈퍼볼 경기를 앞두고 두 연인의 인기가 바이든 선거 이벤트로 활용될 소지를 차단하려는 트럼프 측의 ‘선공’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는 워싱턴포스트의 표현대로 “화제를 바꾸고 싶을 때면 앙상한 음모론의 마른 가지에 성냥불을 댕기는” 사람이다. 음모론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여기는 ‘탈진실’의 왜곡을 부추긴다. 한국에서도 그런 정치인들을 어렵잖게 떠올릴 수 있다. 진실이 갈수록 위협받는 세상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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